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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1
공갈죄로 몰린 현대차 2차 협력사의 비명
현대자동차 1차 하청 한온시스템
2차 대진에 납품단가 인하 ‘압박’
못 견딘 대진 사장, 공장 인수 요구
1200억에 인수한 한온, 공갈죄 고소
대진 사장은 법정 구속돼 6년형
그 과정에서 김앤장의 법률 조력
공갈죄 고소까지 대리하는 상황
서연이화-태광공업 사건도 비슷
2차 협력사 옭아맨 ‘공식’인가
자동차산업 불공정 생태계 심화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협의회’가 지난해 2월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하청업체들이 부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납품을 중단할 시 형사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하청업체 납품중단 시 형사처벌 금지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자동차 원청의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 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2차 협력사가 손실보상이나 기업 인수를 요구하면 이를 구실 삼아 2차 협력사 사장을 공갈죄로 고소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 뒤에는 김앤장 등 국내 대형 로펌의 자문이 있다. 1차 협력사의 갑질과 로펌의 법률 자문이 결합해 자동차산업의 불공정 생태계를 심화하는 현실을 들여다봤다. “한온(현대차 1차 협력업체)이 협력사 대표인 나를 깔아뭉
갰어요. 한온이 갑질을 해서 작년(2015년)에 협력업체로부터 뜯어낸 돈이 1300억원이에요. 제 평생을 다 걸고 한 회사를 한온에 팔려고 생각합니다. 사가십시오. 다른 협상은 없습니다.”(2017년 12월 1심 판결문 중) 한온시스템(한온)과 ‘전속거래’
(원청과 하청 업체가 10년 이상 맺는 장기 계약으로 특정 원청과만 거래하도록 구속하는 불공정 거래로 이어지기 쉽다)를 해온 2차 협력사 대진유니텍(대진)의 송아무개 사장이
2016년 4월 한온 임원에게 악에 받친 듯 말했다. 한온의 경영진이 바뀐 뒤 심해진 ‘갑질’에 내몰린 송 사장은 공장 매각이라는 극약 처방을 택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수년간의 수사와 재판에 따른 고통뿐이었다. 송 사장의 경우는 전속거래 방식으로 상위 사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큰 자동차 업계의 고질적인 피해 사례다. 현대자동차 등 원청이 비용을 아끼려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 그 부담을 전가한다. ‘쥐어짜기’로 경영난에 시달린 2차 협력사가 1차 협력사에 회사를 넘기기도 하는데 이때부턴 또 다른 분쟁이 시작된다. 1차 협력사가 ‘협박에 못 이겨 매각대금을 과도하게 줬다’며 2차 협력사 대표를 공갈죄로 고소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매각대금의 상당액을 받아내면서 ‘병’에 대한 ‘을’의 승리가 굳어지는데 국내 최대 규모 로펌의 조력은 필수적이다. 원청이 고안한 ‘직서열 생산’ 구조에서 갑과 을을 향한 병의 항변은 엄청난 후과를 각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현대차의 2차 협력사인 대진은 1985년부터 차량용 냉각팬과 금형, 플라스틱 신소재를 생산했다. 1차 협력사인 한온은 대진으로부터 받은 부품으로 공조장치를 완성한 뒤 현대차에 공급한다. 대진은 한온에만 부품을 납품하는 전속거래처다. 그러나 2013년 한온이 금형 발주 물량을 줄이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두 회사 간 갈등이 시작됐다. 당기순이익률이 1%를 넘지 못하고 부채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2016년 4월18일, 대진의 송 사장은 거래 중단을 선언하며 한온에 “대진을 인수하지 않으면 생산라인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요구한 매각대금은 1300억원이었다. 이틀 뒤 한온은 대진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온은 1년 전부터 관계를 맺은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아 대진의 부채 등을 감안해 송 사장이 요구한 가격보다 100억원 저렴한 120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한온은 계약 성사 직후인 2016년 4월21일 이사회를 열어 대진 인수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한온과 김앤장은 매각대금이 모두 건너간 날로부터 6일 뒤인 2016년 4월29일, 송 사장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온과 김앤장은 ‘대진의 기업가치가 300억원에 불과한데 송 사장의 협박에 못 이겨 900억원을 갈취당했다’고 고소장에 적었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고 있던 한온은 어떻게 900억원이라는 거액을 ‘뜯기게’ 된 걸까. 한온은 “대진의 부품 납품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현대·기아차의 완성차 생산라인 가동이 멈춰버리고, 10만 협력업체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송 사장이 부품 공급 중단을 무기로 무리한 회사 인수를 요구해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송 사장이 한온에 최후통첩을 한 당일, 공장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 송 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기도 했다. 한온은 김앤장의 법률자문을 받아 대진을 12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연매출 6조원에 이르던 거대 기업이 하청업체의 ‘협박’에 못 이겨 적정가치의 4배를 주고 회사를 인수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이를 계약 과정에서 면밀히 챙기지 못한 책임이 김앤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온은 김앤장의 손을 놓지 않았고 송 사장을 공갈죄로 고소하는 사건까지 맡겼다. 2016년 4월29일 고소장이 접수된 뒤 검찰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돼 그해 7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송 사장을 공갈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에서 송 사장의 공갈죄가 유죄로 인정된 뒤 한온은 민사소송도 냈다. 공갈죄가 인정된 이상 한온이 건넨 매각 대금은 송 사장이 얻은 ‘부당이득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매각 계약서 작성에 관여한 김앤장 ㄱ변호사는 공갈죄 고소 사건도 함께 대리했다.
송 사장 쪽은 민형사 재판 과정에서 한온과 김앤장이 고소를 예정하고 양수도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앤장은 송 사장이 최후통첩을 한 바로 다음날인 2016년 4월19일 오후, 한온으로부터 급하게 대진 인수 관련 법률 자문을 의뢰받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의 급박성으로 사업 양수도 이전의 자문은 (부품) 공급재개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고, 형사고소 가능성에 대한 자문은 26일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매각 계약 3일 뒤에 형사고소를 검토하게 된 것도 “(한온으로부터) 향후 대응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공갈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판결을 여러 개 찾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온 쪽은 법정에서 매각 계약 직후에 공갈죄 고소를 검토한 이유에 대해 “회사 임원 중 1명이 태평양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데, 그로부터 형사고소 가능성을 듣고 고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접적으로 양수도 계약 소식을 전해 들은 태평양 변호사는 상대방의 공갈 혐의를 인지했는데 계약을 위한 법률자문에까지 참여한 김앤장 변호사는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송 사장은 매각 계약 직후의 공갈죄 고소 등이 석연찮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윤도근)는 “(김앤장) 변호사들은 대진 인수대금이 송 사장이 지정한 1300억원이라는 전제하에 계약 조건과 대금 지급 방법만을 의논한 것에 불과하다”고 ‘기획고소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한온은 (납품단가 인하, 납품 금형 생산시간 단축 및 그에 따른 비용 부담 전가 등의) ‘갑질’을 통해 장기간 자동차부품업에 전념해온 송 사장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운신의 폭을 좁게 해 범행을 자초한 면이 있다”며 이를 양형에 고려했다고 했지만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송 사장은 항소심에서 6년형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현대차 협력사 간 갈등→인수 계약→공갈죄 고소로 이어진 패턴은 송 사장에 대한 1심 형사 재판이 한창이던 2017년 4월 서연이화(1차)-태광공업(2차) 사건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는 2차 협력사인 태광공업 손영태 전 회장이 보유한 회사 주식 전량을 50억원에 인수하고, 태광 부채 463억원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을 승계하기로 하는 양수도 계약을 2017년 4월28일에 맺었다. 그러나 나흘 뒤 서연이화는 ‘계약무효 및 연대보증 인수 거부’ 방침을 통보하면서 손 전 회장 부자의 협박으로 회사를 인수한 것이라며 이들을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손 전 회장은 징역 2년6개월, 아들인 손정우 전 사장은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서연이화가 태광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한온-대진 사건과 판박이다. 서연이화를 대리해 인수 계약을 맺고 공갈죄로 고소해 대금을 다시 받아내는 과정의 법률 대리인이 김앤장이라는 점도 같다. 한온-대진 사건에서 계약 및 형사 소송에 모두 관여한 ㄱ변호사도 서연이화 쪽에 자문해주는 등 사건에 개입했다. 태광공업 쪽을 대리했던 오영중 변호사는 “이사회를 통과하고 변호사들이 나서서 계약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나중에 돈을 되돌려받으리란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기업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라며 “2차 협력사가 납품을 중단하며 협박하면 1차 협력사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식으로 공갈죄를 적용시킬 핵심 수단을 대형 로펌이 만들고 이런 논리를 사법부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진이나 태광공업 사례처럼 2차 협력사의 ‘납품 중단’ 절규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전락하는 건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전속거래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
2017년 8월12일 기사 ‘갑과 을이 힘 합쳐서 병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냐’)은 꾸준히 제기됐다. 원청이 비용과 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직서열 생산방식
’(부품 업체들로부터 실시간으로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는 현대차 생산 방식)이 협력사를 향한 압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직서열 방식에서 현대차는 모든 부품을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다.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현대차는 하청업체에 ‘벌금’도 매긴다. 1차 협력사는 이를 면하려고 재고 보유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이 과정에서 하위 협력업체에 재고·비용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갑질과 을질의 연쇄반응이다. 송 사장 공갈 혐의 재판에서 한온 쪽은 “(송 사장)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재고품의 여유가 없어 우리도 생산을 중단하게 되고 그 여파로 현대·기아차의 생산마저 멈추게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대일 전속거래 구조 현실에서 사실상 유일한 거래 대상인 원청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로선 일방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못 이겨 ‘납품 중단’을 무기로 꺼내 보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공갈죄로 처벌한다. 송 사장 형사 사건 1심 재판부는 “대진의 일방적인 공급 중단으로 재고품 여유가 없는 한온의 생산라인을 중단하게 하고, 그 여파로 현대차의 생산마저 멈추게 하면 (한온이) 손해배상책임 등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한온의 다급한 사정을 이용해 인수를 요구했다”며 “공갈 범행은 다수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에 막대한 악영향을 야기할 수 있어 그 죄질이 매우 좋지 못하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생산 생태계에 편입된 뒤 갑질과 을질에 시달리다가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를 사가라. 안 그러면 부품 생산 않겠다’는 항변이 협박으로 간주되고 사법부의 판단도 ‘자동차산업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공장 매각 계약과 공갈죄 고소 건을 동시에 대리하는 ‘패턴’은 더이상 김앤장만의 ‘사업 스킬’은 아니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두올산업은 2018년 6월 2차 협력사였던 ‘미래텍’의 김아무개 대표가 발주량 축소나 단가 인하 갑질에 못 이겨 보상을 요구하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뒤 김 대표를 공갈죄로 고소한 뒤 민사소송을 걸었다. 이때 두올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이 ‘화우’였다. 화우는 2017년 대진 송 사장의 공갈죄 사건에서 송 사장을 대리한 경험도 있었다. 당시 김 대표 쪽을 대리했던 한 변호사는 “미래텍 사건 재판 증인신문 당시 두올산업의 전 대표가 ‘화우에서 조력을 받아 공갈로 엮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고도 했다. 2차 협력사를 옭아매는 이런 방식은 변호사 업계에서도 하나의 ‘공식’처럼 활용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진 사건 등은)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산업이 독점구조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며 “독점구조가 만든 약육강식의 산업 생태계에서 변호사도 의뢰인(1차 협력업체)의 승리를 위해 2차·3차 협력업체를 고소·고발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구조를 모른 채 판결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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