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사람들도 환자대피 도와”…김포 요양병원 더 큰 피해 막았다 - 한겨레
김포 요양병원 화재…오후 2시 현재 2명 사망 36명 부상
김포소방서장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작동하지 않았다”
84살 환자 “간병인이 죽을 둥 살 둥 끌고 나왔다”
“보일러실 쪽에서 ‘펑’ 소리나더니 금세 연기 올라와”
화재가 발생한 경기 김포 풍무동의 한 요양병원에서 24일 오전 한 소방관이 화재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 병실 간병인이 죽을 둥 살 둥 내 휠체어를 끌고 4층 주차장으로 나를 대피시켰어요. 연기가 까맣게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용감하게 잘 끌고 나오더라고….”
24일 오전 경기도 김포의 한 요양병원 주차장. 휠체어에 앉아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던 한경순(84)씨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9시3분께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오후 2시 현재 90대 노인 등 2명이 숨지고 36명이 부상했다. 해당 병원에는 환자 130여명이 입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날 낮 12시께 병원 건물 1층 주차장에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 간병인 등 50여명이 화마를 피해 대피해 있었다. 고관절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한씨는 “콧물이 나고 목이 지금까지도 따갑다”며 “같은 병실 환자들은 대피했는지, 나를 대피시켜준 간병인은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이 난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요양병원은 3층과 4층에 입주해 있다. 1층은 은행과 빵집, 안경집 등이 있고, 2층엔 치과와 한의원 등이 있으며, 3층에는 요양병원 행정실과 식당 등과 함께 당구장과 독서실 등이 입주해 있다.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휠체어나 간병인이 없으면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고령의 노인들이다. 하지만 병원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권용한 김포소방서장은 이날 화재 현장 브리핑에서 “화재가 난 뒤 비상 경보벨은 울렸는데,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며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조사하고 있다. 가장 최근 안전 조사는 지난해 11월 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건 불이 난 직후 다른 층에 있는 상가 주민들이 모두 요양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대피시킨 덕분으로 나타났다. 이 병원 간호조무사는 “병원 직원들이랑 1~3층에 있는 건물에 있는 상가 사람들이 다 올라와서 도와줬다”며 “너나 할 것 없이 다 (환자 침대와 휠체어를) 끌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건물 화재가 발생한 요양병원 소속 약사 이순재(58)씨는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반 마스크 하나를 끼고 불이 난 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환자들을 대피시켰다”고 돌아봤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4층에 주차장 쪽으로 연결되는 경사로가 있어 대피가 용이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 건물 1~4층에는 주차장 램프(진·출입 경사로)가 있는데, 다른 층과 달리 요양병원이 있는 4층은 병원 출입구와 주차장 램프가 곧바로 연결돼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주차장 쪽으로 나오는 통로가 없었다면 다 죽었을 것”이라며 “병원에 있는 환자들 대부분이 자력으로 거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간병인이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한데, 계단으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옮겼겠느냐”고 말했다. 약사 이씨도 “처음 화재가 심하지 않을 때 4층 주차장에서 (환자들이) 대기하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한 경기 김포 풍무동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환자들이 24일 오전 주차장에 대피해 있다. 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고 현장에 있던 주변인들은 이날 오전 8시50분께 보일러실 쪽에서 ‘펑’하는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1층 상가 업주인 최아무개(53)씨는 “5층 주차장 차 안에 있었는데 보일러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펑’하고 나더니 금세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고 말했다. 간병인 박정숙(59)씨는 “입원실에 있었는데 ‘펑’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났다”며 “복도에 내다보니 보일러실 쪽에 연기가 시커멓게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이 요양병원 원무부장 이원희씨는 “병원에서는 기계실이라고 부르는 보일러와 산소 발생기가 함께 있는 방에서 갑자기 ‘펑’ 소리가 나면서 불이 난 것을 봤다”며 “소화기 6개를 썼는데도 불이 빠르게 번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산소 발생기 옆 벽 전체에 계란판처럼 생긴 방음벽을 붙여놨는데 거기에 불이 붙어서 진화가 잘 안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고 발생 직후 뉴스를 보고 현장에 달려온 환자 보호자들은 환자들이 어디에 대피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보호자 홍효숙(56)씨는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보고 위치를 확인해보니까 100살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이어서 달려왔다”며 “아직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살아계시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연세가 있어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울먹였다.
김민제 강재구 서혜미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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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06:04:5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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