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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로 입·코 다막았는데, 연기에 소용없어" 아비규환 김포요양병원 화재 현장 - 조선일보

"휴지로 입·코 다막았는데, 연기에 소용없어" 아비규환 김포요양병원 화재 현장 - 조선일보

입력 2019.09.24 15:33

2명 사망·39명 부상...김포요양병원, 화재 현장
‘펑’ 소리 후, 수 분만에 연기 번져…"불보다 연기가 더 무서워"
거동 불편’ 高齡 환자 많아, 피해 커… "공포의 시간이었다"
"스프링클러 작동안해, 대피 방송無" 경찰 조사전담팀 편성

"이곳저곳에서 ‘나죽네’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비명 밖에 안들렸어요. 휴지로 입과 코를 다 막고 탈출하려고 했는데, 연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고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제 나는) 죽었구나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24일 김포시 풍무동 김포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서 만난 간병인 박경숙(71)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화재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병원 앞 길가는 화재로 깨져나간 유리창 조각들이 쏟아져,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의 얼굴과 방화복에는 검은 그을음이 가득해, 화재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엿보였다. 이 병원에선 이날 오전 9시3분쯤 화재가 발생해 입원중이던 A(90·여)씨 등 2명이 숨지고, 39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부상을 입었다. 이중 8명은 부상의 정도가 심해,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24일 김포 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서 입원환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민서연 인턴기자
24일 김포 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서 입원환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민서연 인턴기자
박씨는 화재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퍽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연기가 다차서 병실 사람들이 기침하고 다 난리가 났다"며 "수분만에 병실이 암흑이 됐고, 못 움직이는 할머니들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복도에서 휠체어를 가지고 왔지만, 나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어 "앞이 깜깜하고 숨도 못 쉴만큼 위험한 순간이었는데, 소방관이 도착해 길을 안내해 탈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보다 무서운 게 연기였다. 우리 235호 병실은 화재가 발생한 보일러실 바로 옆이어서 삽시간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찼다"며 "아직도 기침을 하면 까만게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불이 난 것을 알고도 대피할 수 없어 구조대원에게 구조되기까지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다른 요양보호사 이모(63)씨는 "화재가 난 줄도 몰랐는데 연기가 나길래 뭔가 봤더니 순식간에 자욱해졌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환자분을 데리고 앞을 더듬거리며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은 빠져 나오지 못한 환자를 체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간호사 A씨는 "208호 환자는 직접 창문을 깨고 탈출했고,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하는데 현재 위치가 파악이 안되고 있다.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는 상태"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화재 발생 20여 분 만에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수십 대의 장비와 1000여 명의 소방인력을 투입해 화재 진압 작업에 나섰다. 소방당국은 구조대원 50여 명을 투입해 환자와 병원 관계자들을 계단을 통해 신속하게 대피시켰다. 하지만 치매나 고령 환자가 많아 대피에 어려움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이날 화재가 발생한 지 1시간여 만인 오전 10시 5분쯤 환자 전원을 구조했다.

24일 김포 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환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민서연 인턴기자
24일 김포 요양병원 화재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환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민서연 인턴기자
병원 주차장은 소방대원과 침대에 누워 이송을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찼다. 김포시 직원과 구조대원들은 주차장에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응급·구조대 차량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뒤늦게 찾아온 가족들은 환자들 옆에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화재가 난 요양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찾아온 정경만(66)씨는 "병원에서 화재 관련 소식을 문자조차 보내지 않아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 달려왔다"면서 "뉴스를 보고 가족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원망했다. 병원 관계자는 "현재 건물안이 화재로 인해 통제 불가 상태라서 가족들에게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환자와 가족들은 병원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화재 당시 불로 인해 건물 내부는 정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요양보호사 이모씨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프링클러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며 "어디로 탈출하라는 별도의 대피방송도 없었다"고 했다.

또 이날 화재현장 구조활동을 지원하던 이경주 김포파출소 생활안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중환자들이 있는 병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산소호흡기 없이 이송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며 "병원이라면 다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24일김포 요양병원 화재로 병원 4층 유리창이 모두 깨져 바닥에 떨어져있다./민서연 인턴기자
24일김포 요양병원 화재로 병원 4층 유리창이 모두 깨져 바닥에 떨어져있다./민서연 인턴기자
이에 병원 관계자는 "산소호흡기는 모두 구비되어 있었지만, 급박한 상황에 연기가 자욱해 이송 당시 중환자들에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며 "사고 발생시 경증 환자들부터 이송한다는 매뉴얼을 따랐고, 당직자를 포함해 60여 명이 모두 투입돼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이송했다"고 했다. 이어 "(사망자는) 집중관리실에 있던 분들로, 폐렴 등으로 이미 매우 위독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불이 난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로, 요양병원은 지상 3~4층을 사용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요양병원 4층 보일러실에서 불이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원준희 김포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은 이날 김포 화재현장 브리핑에서 "병원 4층 내 16.52㎡(약 5평) 규모 보일러실에서 불이 처음 난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 보일러실과 병실이 가까워 연기가 바로 병실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원인은 감식이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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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06:33:4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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